담은 애칭이다. 이 삼천리고 출신을 중심으로 1만 명 정도가 시·도별로 정기모임이나 각종 사회공헌사업에 참여한다. 물론 모래알같이 보이는 구성원이지만 좌절과 방황을 이겨낸 이들이라 금세 친해지고 말이 통한다. 집중력과 끈기도 남다르다. 물론 특정 고교 동창회보다 덜 끈끈할지 모르지만 공통의 역경을 딛고 일어섰다는 점에서 연대감을 느낀다. 내가 운영하는 문주장학재단에서 대학에 진학한 후배동문 중 형편이 어려운 이들 30여 명에게 해마다 장학금을 준다. 다른 단체도 마찬가지겠지만 모임이 중장년층 위주로 돌아가는 것이 해결 과제다. 젊은이들의 참여를 좀 더 촉진하려고 애쓰고 있다.”

Q : 예전엔 검정고시 출신임을 드러내길 기피하는 풍조도 일부 있었다.

A : “콤플렉스로 느끼는 분들이 꽤 있었다. 성공한 사람들은 대체로 당당하게 이야기한다. 하지만 성공한 이들 중에도 학업을 중단하는 과정에서 기구한 일을 겪거나 결손가정에서 고생한 이들은 정신적 외상이 있다. 요즘엔 많이 나아졌다. 자신의 자식이 최근에 검정고시를 봤다고 자연스럽게 식사 자리에서 이야기하는 지인이 많이 늘었다.”


Q : 이런 정도 위상이면 이익집단이나 정치적 목소리를 낼 소지가 있지 않을까.

A : “그런 이야기를 하는 분이 부쩍 늘었다. 특히 최근에 중량감 있는 정치인 중에 검정고시 출신이 늘다 보니 그런 이야기가 자주 나오는 것 같다. 하지만 총동문회 차원에서 집단적으로 그런 의지를 내비칠 용의는 없다. 사실 정치인들한테 좋은 표밭이 될 수 있다. 기업인한테도 비즈니스의 장이 될 수 있다. 선배 동문 중에 4선 의원에 장관까지 한 분이 있는데 공부 잘해 월반 하려고 검정고시를 본 분이다. 흙수저 하고는 거리가 멀다. 그래도 총선 때마다 검정고시 출신임을 이력에 꼭 넣더라. 동문 표심을 잡는 데 도움이 됐다고 하더라. 하지만 검정고시는 동질성 못지않게 이질적인 면이 많은 집단이다. 남녀노소가 다 있고 빈부·지식 격차가 큰 집단이다. 합격자 분포를 보면 10대에서 80대까지 다양하다. 사실 가난해서 학업을 잇지 못한 사람만 있는 건 아니다. 뿌리의식도 특정 고교나 대학, 특정 지역의 응집력에 비할 바 안 된다. 정규교육을 어떤 이유로든 뿌리치고 제 앞길을 스스로 개척한 사람들이라 개성과 주관도 강한 편이다. 어떻게 보면 갈등과 분열을 겪는 오늘날 우리 국민의 축소판일 수도 있다.”

학업 통한 계층 사다리 역할 톡톡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새 역할
대안교육·내신세탁 통로로 활용
공교육 살려 검정고시 탈출 막아야


Q : 검정고시 출신들의 배경이 어느 정도 다양한가.

A : “안희정 후보는 이미 고교 시절 학생운동을 하다 제적·자퇴를 반복한 끝에 검정고시로 대학에 들어갔다. 찢어지게 가난한 집의 이재명 성남시장 3형제 모두 검정고시 출신이다. 정세균 국회의장은 전북 진안의 산골 화전민 출신이다. 구두닦이 출신 판사, 달동네 철거민 부모를 둔 국회의원 등 검정고시 출신 중에 기구한 사연들이 수두룩하다. 하지만 이런 사례들이 오히려 검정고시 출신에 대한 이미지를 한쪽으로 고착화했다. 검정고시는 크게 비자발적·자발적 두 가지다. 가난이든 방황이든 불우한 환경 속에서 정규학교 타이밍을 놓친 경우가 비자발적인 경우다. 영재 월반을 하거나, 틀에 박힌 공교육이 싫어서 대안학교나 홈스쿨링을 택한 건 자발적인 경우다. 공부 잘해 특목고에 갔는데 내신 손해를 봐 자퇴한 경우도 마찬가지다. 자발적인 쪽이 늘어나는 추세다. 정근모 전 과학기술처 장관은 경기고 1학년 때 검정고시로 서울대에 들어갔다. 핵물리학자 고(故) 이휘소 박사, 김용준 전 헌법재판소장, 김두희 전 법무부 장관도 대학에 일찍 가려고 명문고 중퇴 후 검정고시를 봤다. 개인적인 지인들 중에 유복한 집안 자녀들이 근래 대안학교나 월반 등을 이유로 검정고시를 많이 본다.”


Q : 어려움을 공감하고 극복의 DNA를 갖춘 이들이 우리 사회에 좋은 일을 할 수 없을까.

A : “혼란과 갈등의 시대에 검정고시 출신들이 공존과 평화를 일깨우는 밀알 노릇에 앞장섰으면 좋겠다. 우선 동창회 입장에서 SNS 등을 통해 정치적 논쟁이나 종교적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일을 하지 말도록 계도하고 있다. 검정고시인 200만 명은 국민의 축소판이다. 촛불과 태극기로 갈라진 민심을 봉합하는 데 앞장서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정치세력화 운운은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Q : 검정고시는 계층 이동의 사다리이자 답답한 정규교육의 탈출구 역할도 겸한다. 후자를 보면 기존 교육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인데.

A : “그렇다. 근본적으로 학교가 즐겁고 수업이 유익하면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내가 교육 전문가는 아니지만 대안학교와 특목고, 홈스쿨링이 왜 인기를 끄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영재들이 모여 선의의 경쟁을 하는 환경도 필요한데, 내신 불이익 때문에 멀쩡히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고 검정고시로 향하는 건 국가적 낭비 아닌가. 숨 막히는 주입식 교육을 지양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창의성이 승부처라고 하는데 검정고시가 그 탈출구가 되는 현상은 반가우면서도 걱정스럽다. 우리 회원 중에 ‘세학자(세상이 학교인 자퇴생 모임)’라는 카페를 만든 이가 있다. 공교육에서 이탈한 젊은이 1만여 명이 가입한 걸 보면 참다운 공교육에 대한 갈증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Q : 개인적으로 검정고시를 하게 된 계기는.

A : “전남 장흥군 5남4녀의 다섯째로 태어나 중학교만 졸업했다. 3년 동안 농사와 김·미역 양식 등 집안일을 도왔다. 이후 광주직업훈련원에서 선반 일을 배우다가 검정고시라는 것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도전해 20대 후반 늦은 나이에 경희대 회계학과에 들어갔다. 첫 직장인 건설회사에서 열심히 일을 배워 부동산개발업체를 차린 것이 꽤 성공을 거뒀다. 부동산 개발과 금융을 수직계열화한 사례는 국내 처음이다. 검정고시에 늘 고마움을 갖고 있다. 벤처도 실패에서 배운다고 하는데 패자들한테 기회를 주는 국가 제도를 앞으로도 젊은이들이 잘 활용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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